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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망하게 되면 으레 성행하는 것들이 두 가지가 있다. 종교, 그리고 도박. 둘 다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몰두하게 된다는 것은 같지만 굳이 차이를 논하자면 전자는 이 현실로부터 도주하기 위함이고, 후자는 이 현실을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갈 편법을 좇는 것이리라. 당연하게도, <김독자 컴퍼니> 일행은 전원 종교를 믿지 않았다. 모두보다 한발 앞서 있는 자를 따른다는 것은 그만한 수혜가 따르기 마련이니까.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은, 니르바나의 구원교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알량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 모두가 명백히 알고 있다. 엎어진 컵을 노려보던 한수영이 길고 긴 고심 끝에 운을 떼었다.
“좋아, 첫 번째 질문. 이 컵에는 구슬이 없지?”
“그렇게 대놓고 묻는 질문은 안 된다니까.”
두 개의 컵을 사이에 두고 그 앞에 마주 앉아 있던 서연우가 고개를 저으며 일갈했다. 한숨을 쉬려던 것을 겨우 참은 기색이었다. 두 사람이 심취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도박이었다. 겉보기에는 시시한 야바위처럼 보였겠으나 그에는 약간의 규칙이 더해져 있었다. 둘은 각자 구슬 하나씩을 가지고 시작한다. 자신의 앞에 있는 컵에 그 구슬을 넣거나 버릴 수 있다. 구슬을 계속 가지기로 한 사람은 판돈을 전부 얻고, 반대로 구슬을 버린 사람은 전부 잃는다. 단, 두 사람이 전부 구슬을 버렸을 때에는 각자 자신이 걸었던 돈을 도로 가져간다. 둘 다 구슬을 가지고 있다면 심판을 보고 있는 공필두에게 모든 돈이 돌아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익히 들었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었으나, 이대로는 시시하다는 한수영의 말에 그들은 ‘신성한 삼문답’을 더하기로 했다. 서로 세 가지 질문과 대답을 교환하고 모든 질문에 진실만을 대답해야 한다는 것은 같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구슬의 유무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물을 수 없다. 그렇기에 ‘신성한 삼문답’의 거절권 또한 사용할 수 없다.
공필두는 이 도박으로 만만찮게 쓸어모았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제 아무리 동료라 한들 돈 앞에서는 상대를 신뢰할 수 없을걸. 그렇게 시작된 게임이 한창 고점을 달리고 있었다. 이제 서로에게 남은 질문은 각자 하나씩만 남은 상황.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에 구경꾼들마저 숨을 죽이고 탁자를 응시했다. 저 컵 안에 구슬이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댄 한수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잖아. 질문의 의미가 있기는 해?”
“기회를 어떻게 쓸지에 대한 결정은 네 몫이지. 질문이나 해, 한수영.”
“하…… 직접 못 물어보면 무슨 소용이야. 문답만 주고받을 거면 이게 그냥 진실 게임이지 뭐냐고. 뭐, 그래. 마지막이니까 아무거나 물어본다. 마지막 질문, 구슬을 버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기는 했어?”
서연우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신, ‘한수영’이 세 번째 대답을 얻었습니다. 뭐? 기함하는 소리와 함께 한수영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어 갔다. 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러 번 되묻는 것을 보아하니 한수영 안의 제 이미지가 어떤 꼴인지는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왜 그렇게까지 놀라?”
“뭐가 왜야? 당연히 가지고 있을 줄 알았으니까.”
“어째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처럼 말하네.”
서연우의 말에 한수영이 픽 웃기지도 않다는 듯 픽 입꼬리를 올렸다.
“잘 들어. 구슬을 버리든 버리지 않든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로 똑같아. 내가 구슬을 버리고 상대가 구슬을 가졌다면 눈 뜨고 돈 다 뺏기는 거고, 만약 눈물겨운 의리로 둘 다 버렸다면 각자 본전 도로 가져가는 거지. 그런데 구슬을 가졌다면?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한 거라면 사이좋게 저 아저씨에게 돈 납세하는 거고, 운 좋게 상대가 구슬을 버렸다면 그야말로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는 미친 찬스가 되는 거잖아.”
거기까지 말한 한수영이 돌연 의자를 끌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테이블에 드리워진 그림자 위로 손가락을 찌르며, 음절 하나 하나를 힘주어 강조하듯 톡톡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말이 이어졌다.
“이건 의리 게임이 아니라 도박이야. 본전을 돌려받을 생각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돈을 따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큰 쪽에 거는 거라고. 안전을 추구할 거라면 애초에 하지를 말았어야지.”
무심한 자와 냉정해 보이고 싶은 자의 눈이 마주쳤다. 저런 표정으로 대체 누가 누구에게 신뢰를 논한다는 것인지. 애초에 깊게 파고들 생각도 없었다. 서연우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이제 자신이 마지막 질문을 할 차례였다. 네 쪽은 얼마나 쓸데없는 것을 묻는지 한번 보자는 듯 팔짱을 낀 한수영이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나는 무용한 기회조차 아쉬워서 아끼고 귀중하게 닦아 쓰거든. 닫혀 있던 서연우의 입이 열렸다.
“나를 신뢰해?”
던져진 것은 발음하는 데에 몇 초도 걸리지 않을 짧은 문장이었으나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는 제법 묵직했다. 그 속내가 이 도박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한수영은 놀란 것 같아 보였다가, 이내 차분히 가라앉았다가,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입꼬리를 씩 올린 한수영이 천천히 컵을 들어올렸다.
“물론이지.”
컵 안에 담긴 그림자가 서서히 걷어지며 안이 드러났다. 반짝이는 빛이 유독 시야에 부시다 두 사람의 뒤로 시스템 창의 알림이 울렸다.
화신, ‘서연우’가 세 번째 대답을 얻었습니다.
상대의 대답은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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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꾼의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