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 한마디가 듣기 어려워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굳이 이를 지 자를 버리고 인연을 뜻하는 연 자를 넣어 개명한 것도, 다 개명해두고 또 우 자는 그대로 냅둔 것도. 모두.
연우야.
그 이름을 가지고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이름을 바꿔봐야 친부모에게 버림 받은 아이 타이틀은 통 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이걸 무슨 소설 속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면 동정, 입을 열면 낮은 신음, 좀 더 나가면 안타까운 음성. 그것들에 대해 따로 부정한 적도 없었으나, 그다지 긍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몇 번은 거북해 속을 게워냈다. 물 한 잔 삼키는 것이 교육의 일종으로 느껴질 때면, 이조차도 어려워 머금은 것을 그대로 뱉어내곤 했다. 그걸 바로잡아줄 어른이 없어 한동안 물을 이로 씹어 삼켰다.
불행 중 다행. 다행 중 불행. 양립이 안 되는 정의가 양립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볼 때면 어린 뇌는 곤혹에 빠졌다. 불행 중 다행은 무관심이었고, 다행 중 불행도 무관심이었다. 반쯤 떠넘기듯 나를 받은 큰엄마와 큰아빠. 그들이 내 부모와 사이가 서먹하다는 것 정도만 외우던 시기의 이동. 경제적으로는 양호했으나, 따지자면 전보다 나을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응할 새도 없이 환경이 종이책 넘기듯 휙 넘어갔고, 그들에게 내 의지는 어린아이 투정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으며, 그 모든 결과로 나는 꽤 지루한 어른이 되었다. 다소 비겁하고 편협적인 형태로.
생각해보면 그들은 나를 가족으로 들인 적이 없었다. 내가 부산에서 서울로 넘어갈 때, 그들이 마중 나온 곳은 고작 서울역이었다. 곧바로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병원이었고 -당연하지만 생판 남의 병문안이었다- 병원 다음으로 간 곳은 다름 아닌 철학원이었다. 그들은 내 생일을 포함한 인적사항을 몇 개 부르고선 나에 대한 사주팔자를 꽤나 긴 시간을 들여 들었다. 그리곤 세 가지 정도 되는 목록을 내게 보였는데, 그 중 집은 것이 지금의 이름이었다. 그 셋 중 둘이 연우고, 고르지 않은 쪽이 인내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중간에 들어간 한자는 이름에는 잘 쓰이지 않았는데, 내 팔자는 한자 뜻이 아니고 한자 신세를 따라가 기회가 오는 족족 놓치는 꼴이 되곤 했다.
그들은 첫 날에 나를 개명까지 시켜둔 거 치곤 내가 집을 나가는 날까지 그 이름을 호적에 넣지 않았다. 집에서의 취급도 별반 다를 거 없이 비슷했다. 가족 외 외부인 정도의 거리. 꽤나 크기가 있는 집에서 호사를 누리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렇게 지내는 7년간 속이 편했다고 한다면 그 또한 거짓이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선 것도 그 탓이었다.
/ 사실 양부모는 서연우를 꽤나 아꼈다... 서연우 친부모 하는짓거리가(서연우 보낸 것도 애 출발하고 2시간 지나서야 연략 넣은 거라 원래 일정에 껴넣는다고 급하게 서울역 간 거) 양아치 같아서 이참에 연도 끊겠다 하고 설명 없이 개명부터 시킴 < 근데 이것도 정상은 아니죠 / 돌아와서 보니 애한테 그랬으면 안 됐는데... 그러나 이미 너무나 남 같은 사이이고... 서연우는 날 때부터 공감 세포라는 게 없는 결여 상태로 환경만 존내 바뀌니까 성격 드러워지고 어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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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우 과거 깊생...